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퍼슨 데이비스 (문단 편집) === 다시 정치로 가다 === 그의 전쟁에서의 능력이 높게 평가받아 데이비스는 [[미시시피]] 주 상원의원으로 선출된다. 하지만 이후 경력은 역시 한미하여 그냥 한 상원의원의 땜빵으로 겨우 반 년 동안 해먹었다. 과학 지식의 보급 향상을 위하여 1846년 워싱턴 D.C.에 창립된 스미소니언 학술 협회 평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이 협회는 이후 유명한 스미소니언 박물관으로 발전한다. 데이비스는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 멕시코와의 종전조약. 이 조약의 결과 멕시코는 현재의 [[캘리포니아]]와 [[유타 주]], [[네바다]] 주 전체, [[뉴멕시코]], [[애리조나]], [[콜로라도 주]]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영토를 넘겨주었다. 또한 독립 및 할양을 인정하지 않았던 [[텍사스]] 주를 인정하고, 국경을 [[리오 그란데 강]]으로 정했다. 그 결과 멕시코는 전쟁 전 영토의 55%를 상실했으며, 그 대신 미국은 멕시코에게 1,500만 달러를 지불하고 멕시코가 미국에게 지고 있던 부채 325만 달러를 탕감했다. ~~그래봐야 껌값~~]에서 멕시코 북동부를 흡수하는 안건에 수정안을 내기도 하였다. 데이비스는 민사업무의 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하였고 기간이 만료된 다음에 다시 뽑히기도 하였는데, 이것도 미시시피주가 돌아가는 꼴에 반대하여 1년도 안하고 사임하였다. 그제껏 정치 면에서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한 데이비스는 이 무렵 드디어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주의 권리를 주장하는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1852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피어스를 위해 선거활동을 벌였다. 결국 그가 응원한 [[프랭클린 피어스]]가 선거에 승리하자 피어스 대통령은 그를 전쟁장관으로 임명하였다. 피어스의 임기가 종료됨에 따라 전쟁장관 임기도 같이 끝나며 다시 상원의원으로 진출하였다. 하지만 상원의원 복무 당시 실명한 그의 왼쪽눈으로 인해 상원의원의 자리가 위태롭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명목상의 상원의원직을 수행하여 보스턴 근처에서 남부연방분리 반대입장을 펼치고 있었으며 북부에서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었지만, 각 주가 너무 강력하고 분리 못할게 없다 식으로 나가자 결국 지지하게 되었다. 데이비스는 남부의 힘은 매우 강하며, 그들이 연방에서 나올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연설하였는데, 북부가 남부가 그냥 분리되도록 놔두지 않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남부는 전쟁이 터지면 군비가 부족하고, 해군의 자위도 못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 결국 1860년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에 선출되면서 상황이 악화되면서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가 11월 20일 연방에 탈퇴를 선언, 그 후 1월 9일 미시시피 주도 연방을 탈퇴한다. 데이비스는 이 사실을 듣자 결국 상원의원직을 사퇴, 미시시피로 돌아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